[K핀테크] 소셜 신용평가로 대출 패러다임 바꾼다 17-11-1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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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대부분 금융회사의 패러다임이 바뀔 겁니다. 사금융 연체율이 제1∙제2 금융권보다 낮아요. 이들이 갖고 있는 신용평가 방법이 제도권 금융사 평가모델보다 안전하다는 게 증명되는 현실이죠. 그러니 보수적인 금융업계도 소셜 신용평가 기술을 도입하리라 봅니다.”
김우식 핀테크 대표는 성공을 자신했다. 핀테크는 2000년부터 금융권 뒷단 시스템을 만들어 온 개발사 핑거가 2014년 말 사내 스타트업 형태로 꾸린 사내 스타트업이다. 핑거는 금융 포털 모네타 운영사인 팍스넷이 SK텔레콤에 인수될 때 최고기술책임자(CTO)였던 박민수 대표가 독립해서 차린 회사다.

핀테크는 기존 금융권에서 신용평가에 반영하지 않는 다양한 데이터를 모아 대출 신청 고객의 신용도를 평가하는 새로운 신용평가 엔진을 만들었다. 이름은 ‘사회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소셜 신용평가 모델’이다. 4월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핑거 사무실에서 김우식 대표와 임선일 사업기획팀장을 만났다.

해외서 각광 받는 대안 신용평가 기술, 국내선 찬밥 신세






미국에 온덱이라는 온라인 대부업체가 있다. 오프라인 지점 없이 웹사이트로만 고객을 모아 대출을 해준다. 온덱의 고객은 자영업자다. 은행에 갈 시간이 없는 소상공인에게 500만원에서 2억5천만원까지 소액 대출을 내준다. 웹사이트에서 신청서를 적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10분. 신청서를 접수하면 몇 분 안에 대출 가능 여부가 결정되고 24시간 안에 대출금을 송금한다. 2007년 문을 연 온덱은 2014년말까지 1조5천억원이 넘는 자금을 빌려줬다.

온덱이 쉽고 빠르게 돈을 빌려주는 비결은 신용평가 기술이다. 대출을 신청한 사업자의 신용도를 재빨리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출 심사를 진행한다. 온덱의 신용평가 알고리즘은 은행 거래 내역, 자금 흐름, 금융권 신용도뿐 아니라 SNS 활동 내역과 맛집 리뷰 사이트 평점과 댓글까지 분석한다. 기술력과 가능성을 인정받은 온덱은 2014년말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기업가치를 1조5천억원으로 평가를 받으며 2억달러(2177억원)를 조달했다.

온덱만이 아니다. 비주얼DNA라는 신용평가 전문 스타트업은 온라인에서 간단한 퀴즈를 풀도록 해 대출 신청자의 신용도를 평가한다. 5분 남짓 퀴즈를 풀면 비주얼DNA는 고객의 성향을 파악해 상환 의지를 평가한다. 얼핏 황당해보이지만, 성과는 전통적인 신용평가 방법보다 좋다. 마스터카드는 비주얼DNA의 평가를 바탕으로 대출 집행하자 사고율(default rate)이 23% 낮아졌다고 밝혔다. 적지 않은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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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금융회사가 앞다퉈 다양한 신용평가 기법을 도입하는데 반해 국내 신용평가 시장은 요지부동이다. 금융회사와 거래 내역만 신용평가에 반영한다. 그래서 신용카드 없이 은행에 빚 안 진 사람이 신용카드 쓰며 부채를 떠안고 사는 이보다 신용도가 낮다고 평가받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연출된다.

임선일 사업기획팀장은 국내 신용평가 방식이 제자리걸음인 이유가 신용평가 시장이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온덱이나 렌딩클럽은 미국 신용평가 시장이 한국처럼 철저하게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모델입니다. 자체적으로 평가 모델을 활발히 개발하는 거죠. 반면 한국은 신용평가 방법이 정해져 있어요. 금융사가 제공하는 금융정보를 신용정보업체가 취합해 다시 신용평가가 필요한 금융사에 제공하죠.”

대출의 첫걸음, 온라인으로 쉽고 빠르게

“내일 당장 돈이 필요한데 급하게 돈 구할 데가 없으니 급한대로 사채 시장이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에서 돈을 써요. 한번만 그래도 신용등급이 내려가요. 다음부터는 제도권 금융에서 정상적인 금융상품을 쓸 수가 없어요. 정상적으로 장사를 잘 하고 있어도 계속 제도권 금융 시장 밖만 맴도는 거예요.”

김우식 대표는 경직된 신용평가 방식 때문에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용자를 품고 싶었다. 그래서 기존 신용평가 모델이 도외시한 정보를 신용평가에 도입할 방법을 마련했다. 핀테크의 소셜 신용평가 서비스 탄생한 배경이다.

대출을 한 번이라도 받아본 이는 잘 알 테다. 대출 신청부터 심사, 실행까지 얼마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가. 들어가는 시간도 만만찮다. 핀테크는 대출 신청과 심사 단계를 단촐하게 정리하기 위해 대출 신청과 서류 제출 단계를 모두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대출 받으면서 수많은 서류를 제출해 본 사람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지 의심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지금부터 핀테크 소셜 신용평가 서비스를 뜯어보자.

핀테크가 만든 소셜 신용평가 서비스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일반 소비자용과 자영업자용이다. 먼저 일반 대출 고객용 서비스를 살펴보자.

일반 고객용 서비스는 크게 3가지 항목으로 고객 신용도를 평가한다. 고객이 온라인으로 입력한 정보가 사실인지 검증하고, 소비 패턴을 분석해 재무 건전성을 평가하며, SNS 게시물을 통해 고객의 성향을 파악한다. 이런 평가는 모두 알고리즘을 통해 자동으로 이뤄진다. 여기에는 고객이 자발적으로 신용평가를 받기 위해 제공한 데이터만 활용된다.

온라인으로 고객이 제출한 서류가 진짜인지 대출회사는 알 길이 없다. 이 때문에 신용평가회사 같은 제3기관이 신용평가를 인증하는 사업을 벌일 수 있다. 핀테크는 고객 데이터를 자동으로 검증하는 길을 택했다. 고객이 대출신청서에 적어넣은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교차검증이다. 언론에서도 자주 쓰는 이 기법은 의심스러운 정보가 있을 때 서로 연관성이 없는 정보원 2곳 이상에게 확인을 요청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고 신청서에 적었는데 막상 페이스북 친구 목록을 들여다보니 서울대 친구는 없고 잡코리아 학력란에도 서울대라고 적혀 있지 않다면 학력을 위조했다고 의심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대출 신청 고객이 서울에 살고 서울에 있는 회사에 다닌다고 서류에 적었는데, 막상 신청서를 접수한 IP가 부산이라고 하면 ‘의심스럽다’고 대출 기관에 귀띔한다.

두 번째로 대출 신청 고객의 소비 성향을 분석한다. 돈 쓴 내역을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로 나눠 점수를 매긴다. 예를 들어 12시 이후에 유흥업소에서 카드를 쓴 적이 있다든가 출퇴근 시간에 교통카드가 아니고 택시를 자주 탄다면 점수가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점수가 높아지는 경우도 있다. 학원 등 교육 관련 결제 기록이 있든지 매일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한다면 플러스 요소가 된다고 임선일 팀장은 설명했다. 물론 실제 평가는 이보다 복잡하다. 출퇴근 시간대에 택시를 탔다고 무조건 점수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직장인이 한 달에 몇 번 정도 타는 수준이라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 다양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한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스크래핑 기술이 쓰인다. 고객이 대출 신청 페이지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제출하면 분석 알고리즘이 사용자 대신 은행이나 카드사 서비스에 로그인해 사용자가 열람할 수 있는 데이터를 그대로 긁어 온다. 경우에 따라 공인인증서 제출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금융권 데이터를 고스란히 가져오기 때문에 서류 조작이 불가능하다고 임선일 팀장은 강조했다.

세 번째로는 온라인 활동 분석이다. 페이스북 같은 SNS에 올린 글 속에서 열쇠말(키워드)을 뽑아내 대출 신청 고객 성향을 평가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에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한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이런 경우 상환 의지가 부족하다고 여길 수 있다. 반면 긍정적이고 활동적인 어휘를 많이 쓴다면 상환 의지가 높다고 본다.

사업자 고객을 평가하는 방식은 개인과 다르다. 소매점이라면 결제단말기(POS)에서 데이터를 받아 실시간으로 현금 흐름을 분석한다. e쇼핑몰 사업자라면 관리자로 접근해 판매하는 물건과 매출, 반품율, 고객 평판 등 요소를 분석한다. 김우식 대표는 실시간 매출을 바탕으로 신용도를 평가하는 방식이 지금까지 나올 수 없던 대출 상품을 낳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지금까지 사업자형 대출은 과거 소득이나 매출 증빙자료를 보고 판단했어요. 그런 자료가 의심스러우면 현장에 실사를 나가서 진짜로 장사가 잘 되는지 봤죠. 우리는 실시간으로 바로 자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실사를 나갈 필요도 없고 실시간 매출 현황에 근거해 대출 한도와 가능 여부를 바로 결정할 근거를 제공합니다. 사업자용 평가 서비스는 특정 금융기관과 전용 상품을 만들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에요.”

핀테크는 이런 다양한 평가 방식을 활용해 고객의 신용도를 평가해 보고서 형식으로 금융기관에 제공한다. 금융기관은 이 보고서를 보고 돈을 빌려줄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 대출을 집행한 뒤에도 주기적으로 소셜 신용도를 추적해 고객을 계속 관리하는 기능도 제공한다. 핀테크는 신용평가 결과를 보고서로 제공하는 대신 사용료를 받거나 대출 이자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다.

핀테크는 아프로서비스그룹과 제휴를 맺고 조만간 대부업체에 개인 고객용 소셜 신용평가 서비스를 대출 상품에 적용할 계획이다. 아프로서비스그룹은 러시앤캐시 모회사다. 온덱 같은 대출 서비스가 국내에 나올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핀테크, 딱 반 발짝만 앞서간다

소셜 신용평가 서비스를 주도적으로 만든 김우식 대표와 임선일 팀장은 모두 은행원 출신이다. 김 대표는 하나은행, 임 팀장은 국민은행에서 일했다. 그러다보니 핀테크 개발사 입장에서 금융업계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두 사람은 국내 금융업계가 보수적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고 그 틈바구니에서 기회를 찾았다. 임선일 팀장이 말했다.

“기존 핀테크 열풍은 금융시장에 너무 기술적인 관점으로만 접근합니다. 이런 건 기존 금융업계에 불편하죠. 저희 서비스는 관련 법률이나 시장을 흔들지 않는 상태에서 접목 가능한 게 장점입니다. 금융회사가 당장 도입할 수 있다는 뜻이죠.”

김우식 대표도 덧붙였다. “국내 대출 시장 구조에서는 저희 평가 모델을 쓴다고 해도 기존 신용등급은 통과해야 합니다. 기존 신용평가 기법은 기본적으로 쓰고, 우리 평가 기술을 활용한 시장은 별도로 만들어갈 겁니다.”

소셜 신용평가 서비스가 당장 기존 신용평가 방식을 대체한다고 보지 않았다. 기존 신용평가 기법으로는 신용도를 파악할 수 없는 고객이 우선 공략 대상이다. 이들을 통해 소셜 신용평가 기술이 검증받으면 점차 저변이 넓어지리라는 것이 핀테크의 노림수다. 김우식 대표가 말했다.

“1∙2∙3∙4등급으로 대변되는 기존 대출 시장에는 우리 정보를 얹으면 됩니다. 향후에는 그런 신용등급이 필요 없어질 수도 있죠. 소셜 신용평가 기술만으로 대출 심사해서 나갈 수도 있겠죠.”

사업 제휴 타고 해외 시장 노린다

기존 금융회사뿐 아니라 크라우드펀딩 같은 핀테크 회사에도 신용평가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아예 자체적으로 크라우드펀딩 같은 금융 서비스 플랫폼을 꾸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임선일 팀장은 “P2P 대출이나 크라우드펀딩 관련 법률이 아직 완전히 갖춰지지 않았다”라며 “우선 확실한 제도권 금융사에 먼저 공급하고 추후에 정부의 움직임에 따라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핀테크가 노리는 시장은 한국 금융시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휴를 통해 소셜 신용평가 모델의 가능성을 검증받으면 해외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김우식 대표는 밝혔다.

“일단 올해 안에 국내 2∙3금융권, 저축은행이나 캐피탈사와 제휴를 넓힐 겁니다. 빠르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해외 쪽에 진출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제휴 검토 중인 러시앤캐시와 손잡고 일본이나 중국 쪽을 노릴 수도 있겠죠.”

김우식 대표는 소셜 신용평가 모델 도입이 대출 패러다임을 바꾸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렌딩클럽이나 온덱이 전통 금융업계에 위기 의식을 불러일으켜 골드만삭스 등이 대안 금융 서비스를 검토 중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김 대표는 국내 대출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저희 사업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전체 발전을 위해서요. 기존 금융기관도 전통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